전쟁이야기

영화 MIDWAY를 보고....

無名人 the first 2020. 1. 2. 17:32



1초 결론 : well made 미국판 대한민국 국방홍보원 영화.


일반관객에게는 벤 에플릭과 케이트 베킨세일이 주연하고 마이클 베이 감독이 연출한 #진주만 이 더 재미날 듯.
밀덕에게는 #MIDWAY 가 더 재미날 것 같음.
도대체 #베드신 이 없는 전쟁영화가 말이 되냐는!!!!!

아무래도 애머리히 감독이 조연출을 국방홍보원에서 데려다 썼다는 근거없는 추측이 듭니다.(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음)
a. A급 스타가 아닌 B급 스타들 또는 누군지 모를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썼습니다.
b. 여주들이 누군지 다들 처음 봅니다.
c. 서사의 전개상 이것 저것 다 집어넣으려 하고, 극중 흐름을 마구 뛰어 넘는 것이 각군/각부대 정훈병과의 강한 겐세이를 받은듯한 데쟈뷰가 듭니다.
d. 찌질이는 하나도 없고, 갈등은 전투 앞에서 해소되고, 루저마저 진정한 군인이 됩니다..

영화평
1. 진주만 기습 장면 고증은 CG를 다량으로 사용해서 전투함들, 대공포, 함교 등의 디테일은 도라도라도라보다 훌륭합니다.

2. 기타 고증도 훌륭한 편. 최초 태평양함대 사령관 킴멜 대장이 기습 허용의 책임을 지고 해임된 후, 니미츠 제독이 부임시에는 소장이었으나 이내 대장으로 2계급 진급된 것이 잘 나타납니다.

3. 진주만 기습전인 1937년 레이턴 소령과 야마모토 제독의 만남부터 진주만 기습 - 마샬군도 공격작전 - 산호해 해전 - 둘리툴 폭격대 도쿄 공습  등등 6개월치의 드라마를 모두 이야기하려다 보니 너무나 산만해집니다. 둘리툴 중령을 맡은 에런 엑하트는 우정출연이 아닌가 싶네요.(방화 "클래식"에서의 조인성이 떠오릅니다.) 뜬금없이 나왔다가 뜬금없이 사라집니다. 거기다가 실제 인물과의 싱크로율도 제일 떨어집니다.
참고로 둘리툴 중령은 MIT 항공공학 박사 출신으로 1942년 1월만 해도 육군 소령이었습니다. 이후 공격대 편성 전에 중령으로 진급하고, 작전 성공후 공적으로 2계급 특진하여 준장으로 진급합니다. 장교로서는 2차대전 최초로 의회 명예훈장을 받았고, 의회 명예 훈장, 은성무공훈장, 동성무공훈장, 공로훈장, 공군 수훈 십자 훈장을 서훈받았고, 공군대장까지 진급합니다.


4. 할시 제독을 맡은 데니스 퀘이드는 할시제독같은 합죽이도 아니고, 사람이 너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5. 미드웨이 해전의 수훈갑인 맥클러스키 중령 역을 맡은 루크 에번스가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주인공이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리처드 베스트 대위 역을 맡은 에드 스크레인이 주인공인데 제가 "왕자의 게임"을 안봐서 그런지 주인공의 필모그래피로는 좀 약하지 않은가 싶네요. 베스트 대위는 영화에서처럼 산소호흡기 안의 과산화 수소를 흡입한 덕분에 폐가 손상되어 지상근무로 돌려지고, 1944년 소령으로 전역합니다. 미드웨이 해전의 전공으로 해군십자장과 비행무공십자장을 서훈받습니다. 나중에 할시 제독이 의회 명예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애쓰지만 성사되지 못합니다. 전과로만 따지면 둘리틀 중령보다 더한 전과를 거둔 두 사람인데 좀 그렇죠.....
멕컬리스키 중령(전혀 안닮았네...)
리처드 베스트 대위

6. 실제로는 독선적이고 급한 성격이라는 평의 제1항공함대 항공참모 겐다 미노루 중좌가 영화에서는 제1항공함대 사령관인 나구모 중장에게 쩔쩔매는 캐릭터로 나와 웃겼습니다. 전후 항공막료장(참모총장)과 참의원 의원까지 역임했던 사람인데요. 거함거포주의에 빠져 있던 전간기의 전세계 해군에서 항모를 이용한 항공전법을 정립한 장본인이자 진주만 기습작전의 실무 설계자이기도 합니다. 오오니시 중장과 함께 가미가제를 창시한 장본인이기도 한데 영화에서처럼 쩔쩔 매었을까요?
겐다 미노루 중좌

7. 전장으로 남편을 보낸 조종사 아내들의 초조함 : 영화 WE WERE SOLDIERS에서도 나왔지만, 저자신 16년간 비행단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수많은 사고가 발생해서 전우를 잃을 때마다 관사 아파트에서 삼삼오오 대대별로 모여서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소식을 듣고 터져나오던 오열과 비명을 들었던 사람이기에 아무리 상투적인 클리셰라고 해도 여기서는 울컥하더군요.


옥의 티
1. 우디 해럴슨이 니미츠 제독 역할을 맡았는데 얼굴만 비슷하고 너무 젊습니다.  거기다가 그동안의 캐릭터가 겹쳐져서 니미츠 제독의 카리스마가 안느껴집니다.

체스터 니미츠 대장



2. 패트릭 윌슨이 연기한 에드윈 레이턴 소령이 태평양 함대 정보부 암호해독반 블랙쳄버의 반장인 Joseph Rochefort 중령의 상관처럼 나옵니다. 레이턴 소령이 임의로 미드웨이 섬의 담수시설이 고장난 것처럼 허위 전문을 보내고 그걸 상부에 보고하는 일본군의 무선을 감청해서 일본군 공격목표가 미드웨이라는 것을 알게되는데요.
Joseph Rochefort 중령
에드윈 레이턴 소령

공식전사에 의하면 "일본의 정찰기가 “AF 근처를 지나고 있다.”라는 내용의 무선 보고를 해독한 적이 있었던 로슈포르 중령은 정찰기의 비행경로를 추정한 결과 AF가 미드웨이 섬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고,
로슈포르 중령은 레이튼 소령을 통해서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 일본군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것과 AF가 자주 언급된다는 점, 그리고 AF가 미드웨이 섬일 것이라는 보고를 한 후, 미드웨이 섬의 담수 시설이 고장 났다는 내용의 가짜 전문을 하와이로 평문 송신하게 하자고 건의했습니다. 3월에 미드웨이 섬 근처에 일본 해군의 비행정이 정찰 왔던 것을 알고 있던 니미츠 제독은 이 건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미드웨이 섬의 정수 시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틀 후, 도청된 일본군 암호 중 “AF에 물 부족”이라는 내용이 해독되었고, 이로써 일본군의 다음 공격 목표가 미드웨이 섬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둘 다 정보관리 책임자였지만, 로슈포르 중령은 암호 해독 전문이었고, 레이튼 소령은 작전계획에 정보를 활용하는 분석관이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엉뚱한 괴짜 이미지 덕에 로슈포르 중령은 대령으로 군경력을 마쳤지만 레이튼 소령은 소장까지 진급합니다.

3.  미군 전투기의 활약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미드웨이에는 F-2A BUFFALO 전투기 20대, F-4F WILDCAT 전투기 6대를 보유한 미해병 전투비행대대 VMF-221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VMF-221은 17대가 격추되고, 7대가 손상을 입는 격전 속에서도 3대를 격추하고, 일본 제1항공함대 제로센 전투기의 많은 수를 붙잡아 두었습니다.
스프루언스 제독이 이끄는 TASK FORCE 16의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에서는 1파 공격대 급강하폭격기 67대, 뇌격기 29대와  더불어 전투기 20대를, 플레쳐제독이 지휘하는 TASK FORCE17의 요크타운에서는  2시간 후에 뇌격기 12대, 급강하 폭격기 17대, 전투기 6대를 투입했습니다.  26대의 전투기들이 일본의 함대방공 전투기 제로센을 붙들고 싸웠기 때문에 급강하 공격기들이 함대방공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임무 협조가 안되어서 엔터프라이즈에서 참가한 엄호전투기들은 상공에서 헛되이 맴돌기만 했습니다만)

F-2A BUFFALO 전투기                                                 F-4F WILDCAT 전투기


US Marine pilots   stationed on the tiny Midway islands were required to defend this most westerly   American outpost in the Pacific Ocean against a massive Japanese air attack   on 4 June 1942. This image by artist John Greaves captures the moment when Marine   pilot 2nd Lieutenant William V. Brooks, flying an obsolescent Brewster Buffalo   F2A-3 hampered by defective landing gear, has engaged two agile Japanese Zeros   and damaged one of them with his fire.

또한,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남은 항모 히류에서 출격한 18대의 급강하 폭격기와 6대의 제로센 전투기가 요크타운을 공격했을 때에도 요크타운의 전투기 와일드캣 12대가 요격하여 10대의 급강하 폭격기를 격추했습니다. 이때 귀환에 성공한 일본기는 8대 뿐이었습니다. 영화상에서는 미군 전투기의 엄호는 단 한번도 안나오고, 급강하 폭격기 후방기총 사수들이 제로센을 다수 격추시키는 것으로 나옵니다. 심지어 베스트 대위도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로 제로센을 격추하기도 합니다만, 실제로는 베스트 대위의 적기 격추기록은 나오지 않습니다.


4. 베스트 대위가 항모 아카기를 격침시키는 장면

영화에서는 베스트 대위가 항모 아카기를 격침시킬 때 맥클러스키 중령과 표적 배정에 혼선을 빚자 자기 비행대의 급강하 폭격기 2대를 이끌고 항모 아카기로 표적을 전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과 부합되는데, 실제 베스트 대위는 아카기의 비행갑판을 따라 강하하면서 공격을 한게 아니라 측면에서 들어가면서 공격을 가했습니다. 다른 항모와 달리 아카기는 베스트 대위가 투하한 500파운드 철갑탄 단 한발로 격침됩니다.

 



5. 베스트 대위가 항모 착함할 때 일부러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NO FLAP LANDING을 하면서 비행갑판 아래로 내려갔다가 POP UP하듯이 내리는데 그렇게 내리지 못합니다.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강하각이 깊게 접근할 수는 있어도 돌고래가 수면위로 뛰어 오르듯 솟아 오르며 착륙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재상승이라면 몰라도)

6. 잠수함 노틸러스호가 일본 구축함으로부터 공격받는 장면
 a. 영화에서처럼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폭뢰가 터지면 잠수함 부숴집니다. 아무리 잠수함이 튼튼해도 그정도 지근거리에서 폭뢰가 터지는데 살아남을 잠수함은 없습니다.
b. 일본 구축함이 노틸러스호를 공격하다가 함대 주력에게 돌아가는 장면에서 잠망경으로 볼 때 잡힌 실루엣은 구축함이 아니라 원래 공격목표였던 전함 기리시마의 파고다 마스트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구축함이라고 나옵니다. 제작진들의 편집의 실수가 아닌가 합니다.

순양전함 기리시마 1940년 구레 항구


많은 분들이 틀리게 알고 계신 것.
둘리틀 폭격대의 일본 본토 폭격 후 중국으로 도피했던 일로 인해서 중국인 25만영이 학살되었다는 자막에 대해 많은 분들이 중국 자본이 들어갔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시는데 객관적 근거가 있습니다.
둘리틀 폭격이 전술적으로 큰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만 일본 군부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미드웨이에서 미 해군 항모 기동부대의 격멸에 나서는 한편, 일본을 폭격한 B-25 폭격기 일부가 중국 절강성에 있는 중국군 비행장에 착륙하자 앞으로 미공군이 이 지역에서 폭격기를 발진시켜 일본 본토를 공습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나방면군 총사령관 하타 슌로쿠 대장은 이른바 "절공작전"을 발동합니다.

작전 목표는 절강성과 강서성을 수비하는 중국군 제3전구를 격파하고 이 일대의 중국군 항공기지와 비행장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원된 병력은 상해에 주둔하는 제13군 6개 사단에다 제11군 2개 사단이 증원되어 8개사단 18만명에 달했습니다. 제13군은 항주에서 출발해 동쪽에서 남서로, 제11군은 남창에서 동쪽으로 진격하고 제1비행단이 제공권의 확보와 비행장의 제압을 맡았습니다. 또한 온주에는 해군육전대가 상륙합니다. 여기에 대항하는 고축동이 지휘하는 중국군 제3전구는 34개 사단 26만명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무장과 훈련이 빈약한 지방잡군이었습니다.

지나방면군 제13군은 5월 15일부터, 제11군은 5월 27일부터 양면에서 공격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중국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절강성 전역을 휩쓸고 다니며 구주와 옥산, 여수 등 주요 비행장을 파괴하였고 7월 1일 강서성 서쪽의 횡봉에서 양군이 조우합니다. 일본군은 진격 과정에서 온갖 파괴와 잔학행위를 일삼았고 센놀트의 회고에 따르면, 적어도 25만명의 중국인이 학살되어 남경대학살에 비견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장마철에다 도로는 완전히 흙탕이 되었고 벌레와 질병에 시달리며 중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퇴각과정에서도 많은 병사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많은 사상자를 냅니다.

8월말까지 일본군은 작전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판단하자 대부분의 점령지를 버리고 원위치로 철수합니다. 장개석의 고향인 봉화마을을 비롯해 절강성은 처참할 정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사실상 군사적 목적보다는 두리틀 비행대의 동경 폭격에 대한 무차별 보복에 가까운 것이었죠.

통상 절공전역에서 일본군의 공격에 중국군이 일방적으로 패주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중국군 역시 제9전구에서 3개군을 증원하는 한편 도처에서 방어선을 구축하여 강력한 저항을 합니다. 따라서 일본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 제15사단장 사카이 나오지 중장이 전사하였고 사상자는 약 3만 6천에 달하였습니다. 중국군 역시 7만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어 제3전구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습니다.16(일본 대본영은 전사 1,284명, 부상 2,767명, 병상자 1만1812명에 대해 중국군 사살 2만4430명, 포로 8,564명이라고 발표17)
[출처] 20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전쟁, 중일전쟁사 30화 < 3차 장사전역과 절공작전 >|작성자 욱이님
https://blog.naver.com/atena02/100179158962 팬더아빠의 전쟁사 이야기에서 재인용.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대장-3스타)과 나구모 주이치 제독(중장-2스타) 일본군은 준장이 없었음.



미드웨이 해전 6월 4일 상보
미드웨이 해전 양군 함대 기동

2시 45분

나구모 함대는 미드웨이 서북쪽 460킬로미터 해상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각 항공모함은 함재기 발진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공격대가 출격 준비를 하는 동안, 나구모 제독은 공격대 발진에 앞서 정찰기를 보내 미드웨이와 인근 해역을 수색하기로 했다. 항모 아카기와 카가에서 각 1기, 순양함 토네와 치쿠마에서 제로 수상 정찰기 2대, 전함 하루나에서 1대 등 총 7대를 오전 4시 30분에 출격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순양함 토네에서 발진 예정이던 정찰기는 사출기 고장으로 30분 지연되어 오전 5시 정각에 출발했고, 치쿠마에서 출발한 정찰기 1대는 엔진 고장으로 중도에 귀환했다. 나머지 정찰기들도 날씨가 좋지 않아 원래 예정했던 것에서 절반 정도만 정찰하고 복귀해야 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순양함 치쿠마 호에서 출발했다가 엔진 고장으로 돌아온 정찰기가 예정 경로로 정찰 비행을 했으면 미국 항공모함 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나구모 제독은 공격받기 전까지 미국 항공모함의 존재를 모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가장 큰 패인이 되었다.

4시 45분
일본군 항공모함 4척으로부터 1차 공격대가 출발했다. 나구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절반인 108대만 출격시키고 나머지는 항모에 잔류시켰다. 공격대 지휘관은 진주만 공격에도 참가한 토모나가 죠이치 대위. 1차 공격대는 항공 엄호를 위한 A6M 영식 함상 전투기 36대, 수평 폭격 임무를 담당하는 97식 함상 공격기(“함공”으로 약칭했다) 36대, 99식 함상 폭격기(급강하 폭격기) 36대로 구성되었다. 원래는 항모 아카기의 비행대장은 진주만 공격을 지휘한 후치다 미츠오 중좌였으나, 그가 출항 직전인 5월 27일에 맹장염으로 함을 떠나면서 토모나가 대위가 지휘를 대신하게 되었다. 1차 공격대의 임무는 미드웨이 폭격이었다.
5시 45분
토모나가 대위가 지휘하는 공격대가 미드웨이 섬으로 향하고 있던 중, 미드웨이 섬에서 새벽에 출발한 정찰기 1대가 이 공격대를 발견했다(05시 20분). 공격대를 호위하던 일본군 전투기가 이 비행정을 발견하여 추격했고, 카탈리나 정찰기는 즉시 구름 속으로 숨어 이른바 “고양이와 쥐” 게임(game of cat and mouse), 즉 숨고 쫓는 숨바꼭질을 벌였다. 이 정찰기가 미드웨이 섬에 일본군 공격대를 보고한 것이 5시 45분이었다. 보고가 있은 후 10분 뒤인 5시 55분에 미드웨이 섬에 설치된 레이다에서도 이 공격대의 접근을 포착했고, 즉시 모든 전투기에 발진 명령이 떨어졌다. B-17 폭격기 편대는 일본 전투기가 접근할 수 없는 고공으로 대피했다. 5시 57분에는 처음 토모나가 공격대를 발견한 정찰정이 다시 일본군 항공모함 함대를 미드웨이 서쪽 250킬로미터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6시 05분
정찰정으로부터 상세한 보고가 미국 항공모함 함대로 보내졌다. 항모 요크타운과 호넷, 엔터프라이즈 등에서 드디어 정찰기를 발진시켰다.
6시 15분
미드웨이 섬에 주둔하고 있던 VMF 221 소속 브루스터 F2A 버팔로 전투기와 그러먼 F4F 와일드캣 전투기가 완전히 출격을 마치고 미드웨이 섬 상공에서 대기했다. 최초로 토모나가 공격대를 발견한 비행정은 일본군 편대 후방에서 어둠을 이용하여 추격하고 있었다. 아직 미드웨이 섬 주변은 동트기 전이라 어두웠다. 일본군 편대가 미드웨이 섬 55킬로미터 상공까지 접근하자 카탈리나 비행정이 조명탄을 투하해 토모나가 공격대의 위치를 알렸다. 이 조명탄을 신호로 고공에서 대기하고 있던 팍스 소령이 지휘하는 미군 전투기 27대가 일본군 편대를 덮쳤다. 이 기습으로 일본군 공격 편대 2대가 격추되고 여러 대가 피탄되었으나, 즉시 호위 임무를 수행하던 제로 전투기 편대가 반격에 나섰다. 나머지 폭격대는 계속 미드웨이로 향했다. 미군기 27대 중에서 팍스 소령을 비롯한 17대가 격추되고, 귀환한 10대 중 8대는 파손이 심해 폐기 처분되어야 했다. 남은 전투기는 겨우 2대였다.
6시 35분 ~ 7시 00분
제로 전투기와 미군 전투기가 공중전을 벌이는 동안 나머지 폭격기 편대는 미드웨이 섬을 폭격했다. 격납고 및 발전소를 비롯한 여러 부대시설을 폭격했으나 토모나가 대위는 나구모 제독에게 추가 공격이 필요하다고 타전했다. 1차 공격대의 피해는 케이트 함상폭격기 2대, 발 급강하폭격기 1대, 제로 전투기 2대가 전부였다. 토모나가 공격대는 방향을 돌려 항모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7시 05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출격 준비에 들어갔다. 어뢰 공격기 29대, 급강하 폭격기 67대, 호위 전투기 20대가 1시간 내에 출격할 예정이었다. 이때 미군 함대와 일본군 함대 간 거리는 280킬로미터였다. 준비가 끝난 호넷부터 VT-8 어뢰 공격 비행대(VT-8) 소속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 15대,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35대 및 전투기 10대를 발진시켰고, 엔터프라이즈도 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 14대,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35대, 전투기 10대를 발진시켰다. 모두 119대였다.
F4F-F20 와일드캣 전투기, Task Force 16, CV-6 USS Enterprise. 1942년 4월 16일
7시 10분
나구모 제독은 토모나가 대위의 보고를 읽고 있었고, 상공에는 함대를 엄호할 제로 전투기가 비행 중이었으며, 갑판에는 무라다 시게하루 소좌가 지휘할 2차 공격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무라다 소좌의 편대는 혹시 모를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이나 전함에 대비해 어뢰를 장착한 상태였다. 이때 폭탄 대신 어뢰를 장착한 B-26 폭격기와 해병 항공대TBD 데버스테이터 어뢰 공격기들이 일본군 항공모함에 공격을 가해왔다. 이들은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항공기였다. 이들의 공격은 대기 중이던 제로 전투기들에게 쉽게 격퇴되어 모두 격추되었고, 어뢰는 쏴보지도 못했지만, 나구모 제독은 토모나가 대위의 보고가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7시 15분
나구모 제독이 결정적인 명령을 내렸다. 2차 공격을 위해 무라다 소좌의 공격대가 장비하고 있던 어뢰를 빼고 다시 폭탄을 달라고 명령한 것이다. 아직 정찰기들로부터는 어떠한 보고도 없는 상태였다. 재무장은 30분이 소요되었다. 이 무렵에 미군 항공모함들은 모든 함재기를 출동시키고 있었다.
7시 30분
토네에서 30분 늦게 출발했던 정찰기가 미군 함대의 존재를 보고해 왔다. 그러나 보고는 불확실해서 항공모함이 있는지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나구모 제독은 즉시 항공모함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무전으로 내렸다.
7시 55분
미드웨이 섬에서 출동한 로프톤 핸더슨(Lofton R. Henderson) 소령이 지휘하는 해병 항공대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항모 히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핸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16대의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전투기 호위도 없이 히류에 돌진했으나 아카기, 히류 그리고 전함 기리시마 등 주위 함정에서 쏴대는 대공 포화와 전투기 편대에 의해 10대가 격추되고 6대가 겨우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핸더슨 소령은 피탄되자 항모 카가에 충돌을 시도했으나 카가에 못 미쳐 바다에 추락했다.
8시 10분
토네의 정찰기가 순양함 5척, 구축함 5척으로 이루어진 미군 함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8시 15분
고도 20,000 피트 상공에서 비행하던 B-17 폭격기 편대가 일본군 항모를 공격했지만, 폭탄을 명중시킨 폭격기는 하나도 없었다.
미드웨이 해전 상세 기동도

8시 20분
토네 정찰기가 다시 미군 항모로 보이는 함정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때 미드웨이에서 날아온 해병 항공대 소속의 11대 폭격기가 다시 일본군 항공모함을 공격했지만 역시 소득은 없었다.

8시 25분
미국 해군 잠수함 노틸러스함이 일본군 전함을 목표로 어뢰를 발사했다. 그러나 속도가 느린 미군 어뢰를 일본 함대는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와중에 토모나가 대위의 1차 공격대가 함대로 돌아왔다. 연료가 떨어져가던 토모나가 대위의 공격대는 항모에 착함해야 했다. 나구모 제독과 켄다 미노루 중좌,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 일본군 항공모함 비행갑판에 대기 중인 전투기들은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토모나가 공격대를 착함시키려면 갑판에 현재 대기 중이던 전투기들은 모두 갑판 아래 격납고로 내려 보내야 했고, 미드웨이 공격도 당연히 늦춰질 수밖에 없다. 착함한 전투기 대신 공격대를 내보내려면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폭탄을 빼고 어뢰 등으로 무장을 교체해야 했다. 히류에 탑승하고 있던 야마구치 제독은 갑판에 대기 중인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이륙시켜 장착 중인 폭탄으로 항공모함을 공격하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결국 나구모 제독은 기존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하고 갑판에 대기 중이던 폭격기들을 도로 격납고로 내려 보내고 토모나가 대위의 공격대를 착함시킬 것을 결정했다(08시 35분). 토모나가 대위의 공격대가 착함하고 연료를 재보급 받는 동안 기존 공격대는 다시 어뢰로 바꾸어 다는 작업을 하고 항공모함 공격을 준비하도록 했다. 연료 재보급과 어뢰 재장착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다시 모두 출격시켜 미국 항공모함을 잡겠다는 계획이었다. 함상 공격기는 800kg 육상 공격용 폭탄을 빼고 833kg 어뢰를 다시 장착하고, 함상 폭격기는 250kg 함선 공격용 폭탄을 다시 장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토모나가 대위의 공격대가 항모에 착함하기 시작한 것은 08시 37분이었다.

8시 30분
플레처 제독이 지휘하는 TF17의 요크타운호에서 급강하 폭격기 17대와 어뢰 공격기 12대가 출격했다.
8시 40분
미국의 공격 편대가 일본군 항공모함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해상에 도착했을 때 바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격대 지휘관들은 몰랐지만, 나구모 함대는 요크타운 쪽으로 북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넷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미드웨이 방향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2개 어뢰 공격기 편대는 북쪽 수평선에서 연기를 발견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 방향은 일본 항공모함들의 항로 후방에 해당했다. 미군의 공격은 전혀 협력이 되지 않았다.
9시 10분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어뢰 공격대가 나구모 함대를 발견했다.
9시 20분
일본군은 항공기들이 갑판에서 폭탄 재장착과 연료 보급을 받는 도중 공격해오는 미군 공격기들을 발견했다.
9시 25분
CV-8 호넷에서 발진한 TBD 디베스터 어뢰 공격기로 구성된 VT-8 어뢰 공격 비행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전투기의 호위를 전혀 받지 못했으며, 저속·저공으로 일본군 항공모함에 접근했다. 상공에서 초계 비행 중이던 일본의 전투기들에게 그들은 아주 쉬운 목표였으며, 미군 어뢰 공격기들은 한 대씩 격추되었다. 15대의 공격기와 30명으로 구성된 이 공격대에서 조지 H. 게이(George H. Gay) 소위(Ensign)만 살아남았다. 게이 소위는 그날 구명조끼에 의존하여 바다에서 일본 해군 항공모함들이 격침당하는 광경을 목격했으며 30시간 뒤 미군 PBY 정찰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VT-8 뇌격비행대대 조종사들의 출격전 사진. 이들 중 앞줄 가운데 원 속의 조지 H. 게이 소위만 생존한다.
조지 게이 소위는 일본항모 4척이 대파되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한 유일한 미군이다.
9시 40분
호넷에 이어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VT-6 어뢰 공격 비행대가 일본군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앞서의 VT-8의 전철을 밟았다.
9시 45분
CV-6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일본군의 구축함 아라시를 발견했다. 비록 공격대는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찾지 못하고, 연료가 떨어져가던 중이었지만 편대장 웨이드 매클러스키 중령과 맥스 레자일은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뒤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이 일본군 구축함은 전함 키리시마 공격에 실패한 SS-168 노틸러스와 추격전을 벌이다가 끝내 격침시키지 못하고 최고 속도로 나구모 제독의 항모 기동 함대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미군 비행대는 일본군 구축함을 뒤따라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비행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에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발견했다.
10시 00분
CV-5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VT-3 뇌격비행대대 세 번째 공격에 나섰다. 이들 역시 초계 비행 중이던 일본군 제로전투기와 대공 화력에 VT-8, VT-6과 똑같은 결과를 빚었다. 그러나 이들의 등장으로 전투 초계 중이던 일본군 전투기들은 전투 초계를 항모 기동 함대의 남동쪽으로 옮겼고, 높은 하늘을 무방비 상태로 남겨두었다.
미드웨이 근해에서 Task Force-16 소속의 CV-8 USS HORNET에 배속된
제8전투비행대대(VF-8)의 F4F-3와  F4F-4 Wildcat  전투기 앞에서 작전토의 중인 전투기 조종사들

10시 25분 ~ 10시 30분
일본군 항공기들이 자리를 비운 틈에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대와 요크타운의 급강하 폭격대가 일본군 항공모함 중 아카기, 가가, 소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웨이드 매클러스키(Wade McClusky) 해군 소령이 공격에 나서 약 4419미터 상공에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군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의 항공모함에는 재급유 및 재무장을 위해 항공기, 정비 요원, 연료와 어뢰, 공격기에서 떼어낸 폭탄이 즐비했다. 제일 먼저 폭탄을 맞은 가가는 폭탄 4발이 연료탱트에 맞아 폭발을 일으켰고, 함교까지 폭발해 함장이 숨지고 함장 임무는 항공장교가 인수했다. 나구모의 기함 아카기는 비행갑판에 1발, 함수 엘리베이터에 1발을 맞았는데, 엘리베이터에 맞은 폭탄은 거길 관통해 기관실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비행갑판에 떨어진 폭탄은 갑판을 완전히 불지옥으로 만들어, 그 자리를 베테랑 조종사들의 화장장으로 바꿔버렸다. 소류는 화재가 발생하여 엔진이 멈춘 후에 미국 잠수함이 어뢰를 쏘았지만 침몰시키지는 못했다.

전투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을 때 야마모토 제독이 이끄는 주력 함대는 항공모함 기동 함대로부터 대략 55킬로미터 떨어진 후방에서 미드웨이로 향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야마모토 제독은 후퇴냐 전진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오전 11시, 회의를 소집한 야마모토는 공격을 계속할 것을 결심했다. 아직 일본군에는 1척의 항공모함이 있었으며, 야마모토의 주력 함대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또, 알류샨 열도로 파견된 공격 함대에도 항공모함 2척(류조와 준요)이 남아 있었다. 이들 항공모함으로 공격을 계속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10시 40분, 히류의 1차 반격
이 공격에서 항공모함 히류('비룡'이라는 뜻)는 제때 회피기동을 한 덕분에 공격을 받지 않고 혼자 살아남았다. 히류와 소류가 소속된 제 2항공전대는 야마구치 다몬 소장이 지휘하고 있었다. 공격을 피한 일본 호위함대는 히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살아남은 함재기들도 히류에 착륙했다. 야마구치 소장은 10시 40분, 고바야시 미치오 대위에게 '발' 급강하폭격기 18대와 '제로' 전투기 6대를 이끌고 미국 항공모함을 공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중 절반은 원소속을 잃어버린 소류와 가가, 아카기의 기체였다. 히류에서 발진한 '발' 급강하폭격기들은 요크타운을 발견하여 공습을 개시했다. 공습이 시작될 무렵 요크타운은 급강하폭격기들을 착함시키면서 전투기들에게는 연료 등을 급유하고 있었다. 일본 비행기들의 접근을 레이다로 알아낸 요크타운은 즉시 전투기들을 이함하고 급강하폭격기들은 다른 배로 보내고 대공 전투를 준비했다.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에서도 전투기 28대가 요크타운을 지원하기 날아왔다. 항공모함 3척에서 발진한 전투기들과 수상함들의 대공 사격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급강하폭격기들은 요크타운에 2발의 폭탄을 명중시키며 치명타를 입혔다. 그러나 요크타운은 아직 함을 조종할 수 있었다. 오후 2시까지 기관실 등의 응급 수리가 마무리되어 18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며, 비행갑판도 수리된 상태였다. 일본군 급강하 폭격기 18대 중 13대는 격추되었으며, 공격대 지휘관 고바야시 대위도 전사했다.

 


일본군 어뢰 공격기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요크타운



12시 45분 ~ , 히류의 2차 반격과 두 항공모함의 최후
이 무렵 항공모함 소류에서 몇시간 전에 발진했던 정찰기가 항모 히류에 착륙했는데, 조종사가 상황을 보고했다. 야마구치 소장은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지휘했던 토모나가 대위에게 어뢰 공격기 10대와 제로 전투기 6대를 이끌고 미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위는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그의 비행기의 왼쪽 날개의 연료탱크가 파손되었지만 수리하지를 못했다.) 토모나가 대위는 12시 45분에 히류에서 출격했다. 토모나가 대위의 어뢰 공격기는 왼쪽 연료 탱크가 파손되어 오른쪽 연료 탱크에만 급유를 받은 뒤 이륙했다. 미국 항공모함을 찾던 일본군은 요크타운을 발견했으나, 수리가 끝나 호위함에 둘러싸인 요크타운을 다른 항공모함으로 착각했다. 폭탄 명중으로 야마구치 소장은 요크타운이 대파되었다고 추측했지만, 요크타운 수리반의 능력은 야마구치 소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토모나가 대위는 공격을 명령했고, 어뢰 2발이 요크타운에 명중했다. 폭탄에 이은 어뢰 2발이 좌현 연료탱크에 연이어 맞으면서 요크타운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토모나가 대위 자신은 요크타운의 갑판에 충돌했다. 토모나가 공격대가 요크타운에서 물러갈 즈음, 미군 정찰기가 히류를 발견했다. 플레처는 즉시 히류 공격을 명령하여 오후 4시에 엔터프라이즈에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20대, 호넷에서 16대가 이륙했다.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20대 중 10대는 원래 요크타운의 함재기였다. 도모나가 공격대의 생존기들이 히류에 착함한 것은 4시 30분이었다. 야마구치 제독이 재공격을 명령하여 일본군은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남은 전력은 전투기 6대, 어뢰 공격기 4대, 급강하 폭격기 5대가 전부였다. 오후 5시,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히류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폭탄 4발이 갑판에 명중했고, 히류는 폭발과 함께 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공격 대기 중이던 나머지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들은 목표를 바꿔 전함 하루나를 공격했다. 5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한 호넷 공격대는 하루나와 순양함 치쿠마를 공격했다. 히류가 치명타를 입어 더 이상 공격을 할 필요가 없다고 미군은 판단했던 것이다. 6월 5일 새벽 2시 30분, 야마구치 소장은 퇴함을 명령하고 자신과 히류의 함장 가쿠 도메오 대좌는 침몰하는 히류에 남았다. 곧 구축함이 와서 생존자들을 수용한 후 부채꼴 형태로 어뢰를 발사했지만, 히류는 곧바로 침몰하지 않았다. 8시 20분, 히류는 바다 밑으로 침몰했다. 한편, 왼쪽으로 26도 기울여진 요크타운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함장 엘리엇 빅마스터 대령이 6월 5일 오후 2시 55분에 퇴함을 명령했다. 요크타운은 6월 6일에도 그 상태로 바다에 떠 있었고, 니미츠 제독은 요크타운을 진주만으로 예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 척의 항공모함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 일본군 잠수함 이-168이 요크타운을 공격했고, 6월 7일 아침에 배가 뒤집히며 침몰했다.

양측 전과 및 피해
미군 : 항공모함 1척(USS YORKTOWN) 침몰, 구축함 1척 침몰, 전술기 약 150기 손실, 307명 전사(조종사 및 승무원 200여 명)
일본군 : 항공모함 4척(소류, 히류, 아카기, 가가) 침몰, 중순양함 1척(미쿠마) 침몰, 항공기 322대 손실, 3,500여명 전사(조종사 및 승무원 약 100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