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야기

2013년 국군의 날 열병 및 분열식에 대한 단상

無名人 the first 2013. 10. 5. 20:08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두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대부분은 제가 경험했거나 배웠거나 어디선가 읽었던 것들에 기초했지만 그 근거를 찾기는 힘들기도 하고 지금은 제 집이 아니라 자료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번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저도 중계방송을 보면서 많이 실망했던 사람중의 한명입니다. 솔직히 실망했다기 보다는 조금은 “화가 났다”는 표현이 옳을 겁니다.
특히 제병지휘관인 권태오 중장과 공군지휘부의 이선호 준장은 제가 모셨던 분들이고, 그분들의 능력을 깊이 신뢰하고 있으며, 이번 행사에 동원된 병력들이 3개월이라는 훈련을 받았다고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리가 러시아나 중국, 북한같은 로봇식 퍼레이드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미군처럼 자유분방한 퍼레이드를 해야하는가?
     
저는 왜 열병 및 분열식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열병 및 분열식은 그 군대의 전투력과 전쟁수행 수준, 군기와 충성심을 적국과 자국의 국민과 정적들에게 보여주는 정치적 행위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열병 및 분열식만으로 전투력과 전쟁수행력을 보여줄 수 없겠지요. 현대의 군대는 전투력 측정을 하기 위해 열병 및 분열식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전력지수, 워게임,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이용하고, 정치적 선전을 위해서는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프로파간다와 마타도어, 기만 작전 등을 사용합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전투력을 측정했을까요? 군대는 어떻게 조직이 되고, 동원이 되고, 유지가 되고, 훈련이 되고, 전쟁에 참가했을까요?
생존 자체가 전쟁인 몽골, 훈족 등의 기마유목민족들은 몰라도, 한곳에 정착해 사는 농경민족들은 전쟁에 즉각 동원가능한 상비군의 유지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농업보다는 통상과 공업이 국가의 주 수입원인 현대를 제외하고는 대규모의 상비군을 보유하는 국가는 결국 국가 재정을 고갈시켜 왕조와 국가를 내부에서 붕괴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국경의 전초기지를 방어하며 적의 공격을 탐지하는 국경 경비병력과 국왕을 경비하며 내부의 반란을 막아내는 친위병력, 일부 귀족의 사병이 상비군의 전부였습니다.
유사시 전쟁을 결심하거나 적이 침범해 올 때는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고유의 동원제도에 따라 대부분 낫과 괭이질만 하던 평민들과 노예들이 징집되어 단기간의 교육/훈련만 받고 귀족들과 부유한 일부 중산층으로 이루어진 장교단의 지휘아래 전투를 치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속한 종심기동이 가능한 기병병력의 대규모 동원이 안되는 상태에서의 전투는 상대방보다 대규모 병력을 결전장에 집중시켜 아군의 위세를 적에게 보여주어 적군의 기세와 사기를 꺽는 한편, 전투가 개시되면서부터는 비숙련 병력의 전장공포를 억누르고 단위제대별로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되어 전장 지휘관으로 하여금 전투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없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개개의 병사들 또한 제대별 대형안에서 바로 옆의 동료들에게서 심리적 위완을 받으며 같이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전투는 초반의 기세를 누가 더 유지하면서 전장의 템포를 주도하고, 대형을 유지해서 아군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고대의 전장에 서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마라톤 평야에 서있습니다.

 
 
멀리서부터 압도적인 숫적우위를 가진 페르시아군이 몰려오는 흙먼지와 소음이 들려오고, 적군이 지르는 야유와 욕설이 들립니다. 전투에 대한 공포로 옆의 동료가 떨고 있는 것인지 내가 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처자식이 계속 생각나고 죽음의 신이 내 머리위에 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잠시 후 하늘을 덮는 듯 새카만 적의 화살들이 마치 소낙비처럼 날아옵니다. 옆의 동료가 쓰러지고, 적의 기병이 돌진해 오고, 투석기에서 불과 돌이 날라와 동료를 으깨어 버립니다.

그냥 도망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료가 내 옆자리를 바로 메꾸어 주고 제 옆구리를 그의 방패로 막아줍니다.
이제 적과 충돌입니다. 맨 앞 오의 동료가 장창에 꿰뚫리고 그 옆의 동료는 적의 칼날에 목이 달아납니다. 어느덧 서너 줄은 되었던 앞의 오들은 다 사라지고 다음은 우리 줄의 차례입니다. 달아나고 싶은데 몸은 어느덧 창과 방패를 굳게 움켜지고 적군의 가슴을 향해 내지릅니다.
불과 몇일 전까지 밭과 논을 갈던 이들을 군인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근대가 되어서 상비군 체제가 되었어도 사병들의 출신 배경과 숙련도, 전투의 수행방법은 별로 바뀌어지지 않았습니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병사들과 사정거리와 치명도는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전장의 가시거리내에 모든 병기가 투사될 수 밖에 없는 전장 환경에서 지휘관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호응하여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전투능력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게티스버그의 들판에서, 워털루 평야에서 여러분은 적의 총포탄이 날라옴에도 불구하고 전장식 소총을 재장전하고 조준하고 발사하고 하는 일련의 시퀀스를 두발로 전장을 딛고 서서 수행하는 데에는 공포의 극복을 위한 특별하면서도 단시간 내에 달성가능한 훈련이 필요했고 그것이 열병과 분열입니다.
 
     
적의 총알과 화살이 날라오고 적의 기병이 칼과 창을 휘두르면서 돌진해와도 내 목숨과 상관없이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열병입니다. 또한, 이 병력들을 임석상관이 지나치면서 이들의 장비와 영양상태, “우로 봐”할 때의 제대 지휘관에 대한 집중도와 일사분란함을 판단하고,
 전장에서의 기동시 대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일사분란하게 지휘관의 명령에 반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분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 이러한 열병과 분열을 위한 제식동작과 퍼레이드이며 훈련소 퇴소시에 전통적으로 행하는 것이 열병과 분열인 겁니다. 바로 “열병 및 분열식”이 평범한 장정들이 이제 정상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군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검열식인 것입니다. 여기서 전투와 지휘경험이 풍부한 임석상관에게 합격을 받아야 진정한 군인이 되는 겁니다.
국군의 최고 지휘관인 대통령 앞에서 벌이는 “열병 및 분열식”은 이러한 군대의 전투대비 태세와 국방력 그리고 국가 원수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전에서도 적군이 사격개시선에 들어올 때까지 전장의 공포심을 억누르면서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발사하거나 도망가는 것을 억누르고, 명령에 따라서는 총알이 빗발치는 적의 진지로 일사분란하게 돌진하여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해전에 임하는 함대도, 전투기/폭격기 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열병 및 분열식”은 “가장 엄정한 군기의 발현”이 되면서 “일사분란함”과 “통일성”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겁니다.
     
특히 국민개병제/징집제 국가에서는 말이죠.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모병제국가와 다른 점이겠지요. 많은 분들이 자유분방한 퍼레이드를 한다고 제시하시는 미국도 징집제를 유지할 때의 퍼레이드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하지요....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만의 혹서에도 불구하고 고생하신 장병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