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야기

2차 대전 폴란드 항공전역 분석

無名人 the first 2013. 3. 15. 20:01

 

※ 이글은 2013년 1월 25일 유용원기자의 군사세계 무기체계 토론방에 올렸던 글이다. 토론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pn=1&num=70795  이 링크를 따라 가시기 바란다.

 

폴란드는 유럽항공계에 잇어서 독창적인 항공기를 생산하는 항공공업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공군(Polskie Powietrzne Sily Zbrojne)은 육군에 소속되어 독립성이 결여된데다 예산도 기병부대의 반 정도 밖에 할당되지 않았을 만큼 경시된 존재였습니다. --> 어느 나라와 비슷하지 않나요? 독창적인 항공기(고등훈련기와 초등훈련기)를 생산하는 항공공업을 보유하고 있으나 육방부에 소속되어 독립성이 결여되었고, 예산도 포병보다도 적을만큼 경시된 존재

따라서 제2차세계대전 직전에는 지상지원용 경폭격기를 제외하고 전투기는 1933년부터 6년간 신형기의 비행은 전무한 상태였으며, 1930년대 중반에는 열강과 어깨를 겨루던 전투기대도 이미 구식화되어 있었습니다.

폴란드공군은 1939년 봄, 전시를 대비하여 재편성되어 전투기대는 폴란드군 총사령관의 지휘하에 수도 바르샤바의 방위를 담당할 요격기여단(5개 비행대 - Eskadra)과 지상부대의 각 방면군 지휘하에서 지상군을 지원할 육군지원공군(10개 비행대)로 양분되었습니다. --> 요거이 지만원 선상님과 육군들이 이야기하는 거이 되겠습니다. 이거로 전력은 확실히! 분산되었습니다.

 

 

폴란드 침공은 1939년 9월 1일 새벽을 기하여 시작되었으며, 이 때의 독일공군 전력은 총 3,652대로 이중 전투기는 Bf109 , Bf110가 1,179댈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폴란드 침공에서는 제1, 제4 항공함대 휘하의 항공기 1,581대를 투입하였고 이중 전투기는 210대였습니다. --> 폴란드와 동맹을 맺고 있었던 영국/프랑스의 반격에 대비하기 위해 서부전선에 전투기들을 중점 배치했기 때문이죠.

 

 

 

 

 

 

 

 

 

 

 

이에 반해 폴란드공군은 일선부대가 총 397대로 전투기는 1932년에 취역한 고익파라솔 단엽, 고정각인 단좌전투기 p.7과 1934년에 취역한 p.7의 엔진/무장을 강화한 p.11 등을 159대 보유하고 있었으나, 현대 전투기로서는 성능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1939년 9월 1일 현재 폴란드공군 전투기대의 배치는 아래와 같습니다

 

DYONS

ESKADRA

기종

댓수

전술

공군

/1

111

PZL P.11

22

112

PZL P.11

/1

113

PZL P.11

22

114

PZL P.11

-

123

PZL P.7

10

육군

지원

공군

/4

141

PZL P.11

22

142

PZL P.11

/3

131

PZL P.11

22

132

PZL P.11

/6

161

PZL P.11

12

162

PZL P.7

10

/2

121

PZL P.11

20

122

PZL P.11

/5

152

PZL P.11

10

151

PZL P.7

10

 

 

독일측의 주력인 Bf109가 시속 350마일이 넘는 반면 시속 230마일의 P.11C는 너무나 느렸죠. 이건 도저히 선회전의 근본인 가감속과 고도의 우위를 이용한 에너지 파이팅에서 비교가 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두꺼운 주익과 익면적으로 선회성능은 좋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유리한 저속선회전으로 유인을 한다면 메서슈미트를 격추할 수도 있습니다만, 메서슈미트가 마음만 먹는다면 폴란드공군기들은 절대 따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분께서는 "비록 P11c가 느렸지만, 숙련된 조종사의 손에 쥐어지면, Me109에 대항할수도 있는 우수하고 잠재성있는 치명적 무기였다."라고 하십니다만, 제공호도 팬텀의 bvr 미사일만 운좋게 피하고 가시거리 내까지 발견만 되지 않고 접근한다면 충분히 팬텀을 격추할 수 있었습니다. 미사일을 피하면서 상황인식을 유지하고 적기를 발견했는데 적기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조건하이긴 하지만요. 팬텀이 제공호와 선회전을 붙으면 불리한데 전시에 어떤 팬텀 조종사가 제공호에게 선회전을 걸겠습니까?

 

폴란드 침공작전에서 활약한 독일공군 부대는 크게 2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것은 독일 지상군이 남부와 북부의 2개 침공루트를 채택한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우선 북부방면은 알베르트 케셀링이 지휘하는 제 1 항공군 (Luftflotte 1)이 맡았으며 남부에서는 뢰어 장군이 지휘하는 제 4 항공군이 담당했습니다. 독일군의 전격전은 첫날 오전 4시 45분에 시작되었으며 비행장등의 항공시설에 집중되었으나 폴란드공군은 이미 8월 23일에 동원령이 내려져 평시의 전개기지로부터 후방기지로 이동해 있었기 때문에 일선부대에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또한, 이른 아침의 짙은 안개로 인해 재대로 된 공격을 가하는 데에도 실패하였습니다.

이 후 소규모의 공중전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주로 독일 공군 전투기는 전선 근접지원에 나선 자국공군의 급강하 폭격기와 경폭격기들을 지원했기 때문에 별로 큰 접전이 없었습니다. 공중에서는 Bf-109 전투기들이 완전히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런 완벽한 전투기의 엄호하에 He 111, Do 17과 같은 고속 수평 폭격기들이 마음놓고 폴란드 진영 상공에 날아들어 폭탄을 퍼부어 댔습니다. 지상군의 전투가 벌어지면 Ju 87 스투카와 헨쉘 Hs 123과 같은 급강하 폭격기들이 정확한 폭격으로 폴란드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방어진지를 뭉개놓았습니다.

순식간에 폭격을 얻어맞고 당황한 폴란드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독일육군의 전차들이 노도와 같이 밀려들었습니다. 사실 이때만해도 독일 전차부대는 1,2호 전차가 주력으로 전차 자체의 성능으로 따져본다면 이렇게 전격적인 승리를 쟁취할 정도로 뛰어난 편은 아니었습니다. 전차부대 단독으로 폴란드 진영을 돌진해 들어갔다면 폴란드군에게 포위공격을 받아 괴멸될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탁월한 전차 전술로 이를 극복했으며 무엇보다 전차부대의 상공에서 필요할 때마다 완벽한 엄호를 해주던 독일 공군의 화력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전격전이 가능했었습니다. 따라서 독일 전차군단 신화의 바탕에는 독일 공군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차의 진격로에 장애물이 나타나 돌격이 지연되면 전차병들은 공군에게 무선으로 지원 요청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디선가 갑자기 스투카가 나타나 강력한 일격을 가했고 폴란드군의 저항거점은 한줄기 연기로 변해 버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독일의 지상병들에게 독일 공군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든든한 하늘의 해결사였습니다. 폴란드 침공전에 참가했던 한 육군 병사는 아래와 같이 일기에 썼다.

 

"우리는 질주하는 전차부대를 따라잡기 위해서 하루에 60km가 넘는 행군을 해야했다. 9월의 더위속에 목은 갈증으로 타들어갔고, 발은 견딜 수 없이 아팠다. 하지만 내가 독일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길마다 전차들이 끝없이 행진하고 있었고, 하늘에는 온통 우리 공군기들이 폭음도 드높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우리 공군을 사랑하며 자랑으로 생각한다."

 

이후 공중전은 산발적으로 벌어지다가, 요격기 여단이 방어하고 있는 수도 바르샤바 공방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공중전이 벌어졌습니다.

첫날은 이른 아침과 저녁 2회에 걸쳐 30~50대의 폴란드 전투기가 Do-17, He-111과 그 호위 전투기 Bf109, Bf110과 교전 14대의 독일 항공기가 격추되었고 폴란드 공군은 10대 손실, 24대의 손상 피해를 입었으며, 9월 6일까지 공방전은 계속되었습니다.

9월 6일 저녁 기지철수 명령을 받기 전까지 폴란드공군은 도합 42대를 격추(Bf-109 6대, Bf-110 4대, He-111 /Ju-87 각각 10대, Do-17 8대 등)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38대를 잃어 요격기 여단의 가용기는 16대 밖에 남지않아 사실상 전멸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수도 이외에 전장에서도 산재한 전투기대가 광대한 국토를 cover하여 필사적으로 싸웠으나(전력의 분산) 그 운용이 지상군지휘하에 있었기 때문에 운용의 적절성이 결여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그래도 9월 6일까지 41대의 손실로 63대를 격추하는 전과를 보였으며, 이날 이미 고립된 포즈난 방면군의 소속기를 제외한 전 전투기대는 루브린 방면으로 후퇴, 공군 지휘 하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전투기대가 P-11형 46대 및 정찰용 P-7 8대를 보유하는 항공단으로 개편, 교체를 완료한 것은 10일 후인 9월 16일이었으나 항공연료의 부족 등으로 전과는 급감되었습니다.

9월 17일 소련군이 루브린 지역의 배후로부터 침입하여 왔기 때문에 공군사령관은 전부대에게 루마니아로 철수할 것을 명령하였으며, 폴란드 정부도 망명을 하고 말았고, 10일 후 항복하였습니다.

폴란드 전역에서 독일공군의 손실은 285대(Bf-109 67대, Bf-110 12대, Ju-87 31대, 쌍발폭격기 78대, 정찰기 63대) 등이었고, 폴란드 공군의 공인격추수는 약 220대(전투기 126대, 타기종 7대, 대공포 부대 약 87대)로 되어있어 직접 비교가 어렵습니다.

특히 폴란드 전투기대가 주장하는 전과의 내역은 Bf-109 12대, Bf-110 9대, 슈투카 18대, 쌍발폭격기 56대, 정찰기 15대 등입니다. 한편 폴란드공군의 손실은 327대로서 이중 공중전에 의한 것은 약 70대 입니다.

전투기의 손실수는 불명이나 루마니아로 탈출한 전투기 댓수는 추적기여단 소속 43대, 육군지원항공대 소속 7대 등 도합 50대로서 전투기간에 보급된 7대를 빼면 손실댓수는 116대가 됩니다.

 

당시 폴란드 공군의 전과 기록은 정권이 붕괴되고 도피 중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신빙성이 독일 측에 비해 떨어지지만 이 것을 그대로 고려하더라도 21 : 70으로 1:3의 손실교환비를 기록, 공대공 전투에 있어서 학살을 당했다고 보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독일 공군의 손실도 다대했던 것은, 서부전선에서의 영국과 프랑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전투기 전력의 최소전력만 전개되었고, 근접항공지원을 하는 공격전력을 엄호하기 위해 엄호 전력으로 투입이 된 전력이 다수였다는 점, 이에 따라 호위 전력으로부터 분리된 공격기/폭격기 전력이 폴란드 전투기에게 습격당한 경우가 많다는 것, 폴란드군의 대공포 전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점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폴란드 공군은 열세한 전력으로 그나마 가용전력을 집중운용하여 국지적 숫적우세로 제공권 장악을 성취하지 못했고, 공세적 전력 운용은 커녕 지상군에 대한 독일 공군의 위협을 일소시키는 데도 실패해서, 지상군의 유기적 연결의 절단과 독일군의 배후로의 침투를 저지하는데 실패하고, 초반의 성능과 숫적 열세를 끝까지 뒤집지 못했습니다. 즉, 폴란드 공군은 자신들의 임무를 무엇하나 달성하는데 실패했던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foxmouse airbase - 불타는 하늘" http://airwar.hihome.com/frame2.htm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폴란드 전역에서 독일공군의 역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글입니다.

하지만 폴란드전선에서 독일 공군은 몇가지 전술상의 문제점을 노출했다. 우선 폴란드군의 전투기 세력이 매우 미약했으므로 제대로된 항공전이 벌어지지 않아 더 강한 적국과 상대할 경우에도 같은 상황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었고, 9월 1일 개전 첫날에는 지상에 짙게 깔린 안개로 인해서 폴란드의 주요 비행장에 대한 공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점등이었다. 폴란드 비행장들은 공습에의해 파괴된 경우보다는 독일 육군의 신속한 전진에 의해서 점령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리고 독일공군조차 지상군이 이토록 빨리 전진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몰라 지상군 선봉부대가 아군의 폭격기들에 의해서 폭격을 받는 사건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이런 공군과 육군과의 부조화의 가장 좋은 예는 9월 8일에 시행된 고라 칼바르야 지역의 한 교량에 대한 공습 작전이었다. 독일공군은 이 교량이 폴란드 지상군의 주요 퇴각로로 사용되고 있다고 믿었으며 도주하는 폴란드군을 차단하기 위하여 Ju 87 스투카를 투입하여 교량을 파괴해 버렸다. 그런데 이 순간 교량 바로앞에는 어느새 진격해온 독일 전차부대의 선봉대가 폴란드 수비병들을 일소하고 막 이 교량을 건너 진격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우군기들의 정확한 폭격덕분에 진격로를 잃어버린 전차부대장은 격노하여 하늘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결국 공병대가 한나절을 소모하여 임시 교량을 부설한 후에야 진격을 계속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고들은 대승전속에 벌어진 몇가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공군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폴란드군에게는 설상가상으로 동쪽에서 독일과 비밀 협정을 맺은 소련군이 갑자기 자신들의 몫으로 약속된 폴란드의 절반을 점령하기 위해 돌진해 들어왔다. 유럽의 소국 폴란드에게는 이런 양대 군사대국을 상대로 전쟁을 지속할 만한 힘이 없었다. 전황이 절망적으로 변해가자 후퇴를 거듭하던 폴란드군과 바르샤바 시민들이 수도 바르샤바만은 절대로 넘겨줄 수 없다는 결사 항전을 선언하고 참호를 파고, 기관총을 설치하고, 장애물을 구축하는등 도시를 둘러싼 방어선을 구축한 후 독일 육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의 모든 건물에는 기관총좌가 설치되었으며 모든 길목에는 전차를 차단하기 위한 함정이 만들어 졌다. 이렇게 되면서 바르샤바를 완전히 포위한채 항복을 권유하던 독일군은 공격을 재개했으나 독일 전차부대의 진격이 갑자기 지지부진 해졌다. 좁은 길목을 지나가던 전차에 폴란드 시민들이 화염병을 마구 던져 전차병들이 불에 타죽거나 길목이 막히기 일쑤였고, 폴란드의 평원을 질주해온 독일군 병사들도 바르샤바 외곽에서 폴란드 저격병들의 총탄을 피해서 엄폐물을 찾아 웅크리고 숨어야 했다. 하지만 폴란드군의 이런 용전의 결의도 한가지만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의 공격이었다.

  갑자기 진격 일정에 차질이 생기자 답답해진 독일군 총사령부는 공군에게 해결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런 상황은 폴란드 에서의 전공을 전차부대가 독식할까봐 안달하고 있었던 공군원수 괴링에게 그렇게도 바라던 절호의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폴란드의 저항에 화가 머리끝까지난 히틀러는 괴링의 요구를 받아들여 바르샤바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명령했다.

 

 

 

 

 

 

 

 

 

 

 

 

 

 

 

 

 

 

 

 

 

 

 

 

[ 스투카의 조준폭격을 받은 바르샤바의 가스공장이 불타오르고 있다. 이와같은 주요시설이 폭격을 받아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다. 주요 목표가 모두 파괴된 후에는 전 도시에 대한 무자비한 공습이 감행되었다. ]

1939년 9월 25일, 궁지에 몰린 폴란드 방어군은 초조하게 독일 전차부대가 공격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불리하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싸울 각오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의 지상군은 오지 않았고, 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이쪽으로 날아오는 독일 공군의 폭격기대군을 목격했다. 하늘을 뒤덮을 듯 날아온 400대의 독일공군 폭격기, 급강하 폭격기들이 폭탄의 비를 퍼부었다.

독일 폭격기들은 마치 폭격 연습이라도 하듯이 바르샤바의 모든 건물들을 무차별로 폭격했다. 스투카 조종사들에게는 시가의 건물들이 연습용 표적이나 마찬가지였으며, 귀청을 찢는 싸이렌을 울리면서 급강하 폭격을 퍼부었다. 이것은 완전히 저항능력이 없는 민간인에 대한 대 학살극이나 다름 없었다. 단지 폭격기 조종사들은 이런 참상을 가까이서 보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이 떨어뜨린 폭탄에 대해서 별로 죄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죽은자와 산자, 폐허가된 도시에서 급조된 관 주위를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도시의 참상을 보여준다. 관속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건물더미에 깔려 죽은 시민의 수는 더 많았다.]

 

결국 바르샤바는 스페인 괴르니카의 운명을 답습했다. 시가는 온통 폐허로 변해버렸고, 화염과 연기와 공포,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온 도시를 뒤덮었다. 수도와 도시가스가 차단되어 도시 전체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1주간의 무차별 공습을 견디다 못한 폴란드군은 9월 28일 결국 백기를 들었고 독일 전차부대가 행진하듯이 바르샤바로 진주해들어감으로서 4주간에 걸친 폴란드 침공작전은 막을 내렸다. 이 바르샤바 포위전에서 무려 12000여명의 시민이 희생당했다. 독일군과 싸우기 위해서 바르샤바 외곽의 한 건물에 숨어있던 한 폴란드 저격병은 이 악몽과 같았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도대체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런 것이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이 나타난 폭격기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 한가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것은 부디 내가 있는 곳에만 폭탄이 떨어지지 말아달라는 절규였다. 폭격이 시작되면 사방에서 귀를 멍하게 만드는 폭음과 함께 내가 숨어있는 건물이 흔들렸다.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온몸이 굳게되고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면 그저 엎드려서 기도를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앞이 안보이는 연기와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일어나는 먼지와 지옥의 불길만이 있었다.

내가 은신한 건물도 폭탄의 직격을 맞았는데 그순간 쾅하는 폭음과 함께 머리를 망치로 얻어맏는 듯한 충격을 느끼면서 쓰러졌다. 잠시후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나의 하반신이 건물더미에 깔려있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으나 주위의 다른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을 알았을 때 공포가 엄습해왔다. 몇시간여에 걸친 폭격이 끝난후 어둠이 밀려올무렵 건물밖으로 기어나와보니 주위에는 멍한상태로 주저앉아있는 몇몇 사람들이 서로 할말을 잊은채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4주간에 걸친 폴란드 침공작전에서 독일군은 217기의 폴란드 항공기를 격파했다. 폴란드의 잔존 항공기 116대는 모두 루마니아로 도주했다. 대부분의 폴란드 항공기들은 날아오르지도 못했으며 지상에서 공습에의해 격파되거나 독일 육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 폴란드공군의 전력중에서 그나마 독일 지상군에대해서 폭격을 해서 피해를 주었던 PZL P-23 카라스 폭격기, 하지만 9월 1일 하루만에 일소되고 말았다. ]

 

반면 처음으로 전격전을 실행했던 독일공군의 손실도 예상외로 상당한 편이었다. 일방적인 전투였음에도 대공포화에의한 손실등 각종 전투 손실이 전투기 79대와 폭격기 109대로서 총 188기에 달했다. 게다가 97기의 지원기 (수송기, 정찰기)가 손실되었으며, 작전중 각종 사고로 심각한 손상을 입어 사용불가능하게 된 기체들이 279기에 달해서 당장 공군의 사용가능한 전력에서 이탈한 항공항공기들이 총 564기나 되었다. 이와같은 수치는 극비사항이 되어 외부에 노출이 되지않도록 숨겨지고 있었으나 독일공군에게는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독일 공군 장교는 폴란드 침공전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예측하지 못했던 착오와 실수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공군이 더욱 강력하게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조종사들은 실전에서의 착오를 통해서 자신감을 얻었고, 정비병들과 지상요원들은 생각하지 �